채식주의자 리뷰|한강의 대표작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채식주의자 리뷰|
한강의 대표작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처음 읽었을 때는 영혜가 왜 그렇게까지 고기를 거부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다시 읽고 나니 영혜의 행동보다 그녀를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으려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더 불편하게 보였습니다.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이 소설을 잘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영혜도 이해되지 않았고, 식물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더 멀게 느껴졌습니다.

책을 다 읽고도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남았습니다.

사람들이 왜 이 작품을 두고 강렬하다고 말하는지는 알 것 같았지만, 제가 정확히 무엇을 읽은 것인지는 쉽게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잔인한 장면도 있었고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장면도 있었지만, 두 감정이 편하게 나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름답게 묘사된 장면 안에 불편함이 있었고, 조용한 문장 뒤에는 생각보다 큰 폭력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한 번 읽고 바로 감상을 정리하기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펼쳤을 때는 조금 다른 부분이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영혜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했다면, 다시 읽을 때는 왜 주변 사람들은 영혜를 그대로 두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영혜의 선택이 옳았는지 판단하는 것보다, 그녀의 몸과 삶을 다른 사람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자기 것처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더 불편했습니다.

처음에는 영혜가 이해되지 않았다

소설은 영혜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남편의 시선으로 진행됩니다.

남편은 영혜를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아내로 생각합니다. 아주 아름답지도 않고, 강한 개성을 드러내지도 않으며, 자신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여자라고 여깁니다.

그에게 좋은 아내란 자신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영혜가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면서 남편의 일상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영혜는 냉장고 안의 고기를 버리고,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거부합니다.

남편에게 중요한 것은 영혜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가 아닙니다.

아내의 행동 때문에 자신이 불편해졌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처음 읽을 때는 저도 남편과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영혜의 행동이 갑작스럽고 지나치게 느껴졌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도 가족 모임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이후의 행동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왜 아무에게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을까.

왜 도움을 거부할까.

조금만 다르게 행동하면 모두가 편해질 텐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 이 질문 자체가 영혜의 가족들이 던지는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영혜에게 왜 그러느냐고 묻지만, 정말로 영혜의 대답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영혜의 설명이 아니라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는 대답에 가까웠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선택이 왜 모두의 문제가 되었을까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그 선택을 개인적인 취향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남편은 회사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아내 때문에 자신이 곤란해질까 걱정합니다.

가족들은 영혜의 행동이 집안의 분위기를 망치고 부모의 말을 거역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혜의 몸에 무엇을 넣을지는 영혜가 정해야 할 것 같지만, 소설 속에서는 그 단순한 선택조차 가족 전체의 문제가 됩니다.

특히 가족 식사 장면은 읽을 때마다 불편했습니다.

가족들은 영혜를 걱정한다고 말합니다.

건강이 나빠질까 봐 그러는 것이라고 하고,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곧 강요로 바뀝니다.

먹기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이려는 순간, 걱정이라는 말은 더 이상 따뜻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도 답답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고 음식을 거의 먹지 않으니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상대의 몸을 붙잡고 자신의 뜻을 밀어 넣는 행동까지 정당해질 수는 없었습니다.

이 장면이 더 불편했던 것은 아주 낯선 폭력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해도 된다는 생각.

너를 위해서 하는 일이니 네가 싫어해도 따라야 한다는 말.

우리가 너보다 너를 더 잘 안다는 확신.

형태는 다르지만 일상에서도 자주 만나는 태도입니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과 내 방식대로 바꾸고 싶은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섞입니다.

영혜는 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말하지 않았을까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답답했던 부분은 영혜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남편도 말하고, 형부도 말하고, 언니도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영혜는 자신의 마음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꿈에 관한 짧고 불안한 장면들이 나오지만, 그것만으로 영혜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이 점이 아쉬웠습니다.

영혜가 왜 고기를 거부하는지, 왜 자신의 몸을 점점 다른 방향으로 밀어가는지 조금 더 설명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야 영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시 읽을 때는 오히려 영혜가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소설의 중요한 부분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면 이유부터 요구합니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해야 그 사람의 선택을 인정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명이 충분하지 않으면 이기적이라고 말하거나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모든 고통을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감정은 본인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말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이미 여러 번 무시당한 뒤라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영혜의 침묵은 답답했지만, 동시에 그 침묵까지도 다른 사람들이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혜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모두 영혜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확신합니다.

남편은 영혜를 무책임한 아내로 보고, 가족은 말을 듣지 않는 딸로 봅니다.

형부는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완성해줄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그 안에서 영혜가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계속 뒤로 밀립니다.

아름답게 보이는 장면도 편하지 않았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영혜의 형부가 중심에 놓입니다.

그는 영혜의 몸에 남아 있는 몽고반점을 떠올리고, 그 몸 위에 꽃을 그리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소설 속 묘사만 떼어놓고 보면 아름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사람의 몸 위에 식물의 이미지가 겹쳐지고, 현실과 환상이 섞이는 장면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 읽을 때는 그 장면의 이미지에 더 많이 끌렸습니다.

다른 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고, 문장도 강하게 남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읽었을 때는 아름답다는 말만 하기 어려웠습니다.

형부가 영혜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예술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그 안에도 자신의 욕망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영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로 바꾸어 바라봅니다.

영혜가 식물이 되고 싶어 한다는 마음조차 형부에게는 하나의 아름다운 소재가 됩니다.

그 장면을 영혜가 선택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나누기는 어렵습니다.

영혜가 아무 의지 없이 끌려가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형부가 영혜의 상태를 자신의 욕망과 작품을 위해 사용했다는 불편함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은 아름다운 이미지와 폭력적인 시선을 한 장면 안에 함께 놓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쉽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아름답다고 느낀 뒤 곧바로 그런 감정을 가져도 되는지 불편해집니다.

저는 그 불편함 때문에 이 부분을 오래 기억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인혜를 보면서 평범하게 사는 사람을 생각했다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영혜의 언니 인혜가 중심에 놓입니다.

처음 읽을 때는 인혜가 세 인물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족 안에서 벌어진 일을 수습하고, 아이를 돌보고, 일을 계속하며, 병원에 있는 동생까지 챙깁니다.

모두가 자기 욕망과 불편함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 인혜는 무너지지 않고 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인혜가 가장 강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읽으니 그 강함이 꼭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인혜는 잘 견뎌왔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기 싫은 일도 하고, 무너지고 싶은 순간에도 일어나고, 주변 사람이 떠난 자리까지 대신 감당합니다.

영혜가 모든 것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갔다면 인혜는 모든 것을 감당하는 방향으로 살아왔습니다.

겉으로 보면 두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한 사람은 사회가 요구하는 삶에서 멀어지고, 다른 사람은 끝까지 그 안에 남습니다.

그런데 인혜가 영혜를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혜 역시 자신의 삶을 계속 견디기만 한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자신은 정상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원해서 그렇게 살아온 것인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저는 영혜보다 인혜에게 더 마음이 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영혜의 선택은 너무 극단적이라 제 삶과 바로 연결하기 어려웠습니다.

반면 인혜처럼 해야 할 일을 계속하고, 다른 사람의 몫까지 맡으며, 자신이 힘든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모습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정말 괜찮은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무너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덜 아픈 것도 아닐 것입니다.

영혜를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이 작품을 두고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여성의 이야기라고 설명하는 글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 해석이 왜 나오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영혜는 아내와 딸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거부하고,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의 뜻대로 두지 않으려 합니다.

남편과 가족이 당연하다고 믿는 질서에서 빠져나가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영혜를 자유를 얻은 사람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영혜는 점점 자신의 몸을 해치고, 음식을 거부하며,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에서 멀어집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이 자유인지, 사라지는 것인지, 폭력이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식물이 되고 싶다는 영혜의 마음은 아름답게 들리는 동시에 슬펐습니다.

아무것도 죽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며 햇빛과 물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을 가진 채 식물이 되려는 선택은 결국 자신의 생명까지 거부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영혜의 행동을 용기 있는 저항이라고만 부르기에는 마음이 걸렸습니다.

반대로 병든 사람의 이상 행동이라고만 정리하면 작품에서 말하려는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 같았습니다.

영혜는 분명 아파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아픔이 영혜 개인의 문제로만 생긴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족 안의 폭력과 억압,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 참는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삶이 영혜의 내면과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영혜를 쉽게 이해하거나 판단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이 읽는 사람을 답답하게 하지만,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유명해진 뒤 읽어도 편한 소설은 아니었다

한강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채식주의자를 다시 찾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대표작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왠지 꼭 읽어야 할 것 같고, 읽은 뒤에는 작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할 것 같은 부담도 생깁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유명세와 상관없이 여전히 불편하고 어려운 작품입니다.

줄거리가 복잡해서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벌어지는 일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어려운 것은 인물의 행동을 하나의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여성 억압에 관한 소설로 보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폭력을 거부하려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통제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고, 인간의 욕망과 예술의 폭력성을 다룬 소설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어느 하나의 해석만 맞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와 다시 읽었을 때 마음에 남은 부분도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영혜의 기이한 행동과 강한 장면들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시 읽은 뒤에는 남편이 영혜를 설명하는 말, 가족들이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영혜를 몰아붙이는 모습, 모든 일을 감당하고도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인혜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책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읽는 사람의 경험과 나이가 달라지면서 같은 문장이 다르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잘 맞는 사람과 힘들 수 있는 사람

사건이 빠르게 이어지고 결말이 분명하게 정리되는 소설을 좋아한다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영혜의 마음이 자세히 설명되지 않고, 상징적인 장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물에게 쉽게 공감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편한 소설은 아닙니다.

어느 인물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누군가를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으로 단순하게 나누기도 어렵습니다.

폭력적인 장면과 성적인 묘사도 있어 가볍게 읽을 책을 찾는 사람에게는 권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한 번 읽고 바로 끝나는 소설보다 읽은 뒤 계속 생각하게 되는 작품을 좋아한다면 읽어볼 만합니다.

가족과 사회가 한 사람을 정상이라고 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남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문장이 길고 화려하지 않은데도 강한 이미지가 남는 소설을 좋아한다면 한강의 문체가 잘 맞을 수 있습니다.

다만 유명한 작품이니 반드시 감동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도 괜찮고, 불편해서 좋아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모든 장면을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남았기 때문에 다시 펼쳐보게 된 책이었습니다.

마치며|다시 읽으니 다른 사람이 더 보였다

처음에는 영혜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다시 읽은 뒤에는 왜 아무도 영혜를 그대로 두지 못했는지가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렇다고 영혜의 모든 선택을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어렵고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바로 고치려 들었던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전보다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채식주의자는 읽고 나서 마음이 편해지는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보이는 책이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이 작품은 한 번의 독서로 끝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채식주의자는 어떤 소설인가요?

평범하게 살아가던 영혜가 어느 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벌어지는 변화를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한강의 연작소설입니다.

채식주의자는 채식에 관한 소설인가요?

채식 자체를 설명하는 소설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몸과 선택을 가족과 사회가 어떻게 통제하려 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채식주의자는 읽기 어려운 책인가요?

문장은 비교적 간결하지만 폭력적인 장면과 상징적인 표현이 많아 편안하게 읽히는 소설은 아닙니다. 인물의 행동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아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를 다시 읽을 만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영혜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에 시선이 가지만 다시 읽으면 영혜를 정상으로 돌려놓으려는 주변 사람들의 욕망과 폭력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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